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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세.
누구나 어느 정도는 허세를 부린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악의 없이. 영업을 위해 비싼 외제차나 고급 손목시계, 시내 중심가 사무실을 구비하는 사업가, 좋아하는 여성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소득을 부풀려 말하는 남성, 명절날 고향집에 돌아가 요즘 주식으로 대박났다고 허풍 떠는 백수, 집들이하기 전에 청소를 하는 주부, 소개팅 전에 화장을 하고 보정 속옷을 입는 여성, "누구든 작은 하마 건드리면 X 되는 거예요."... 나 역시 허세를 부린다. 남들과 다르지 않다. 허세가 없다면 잘 돌아가지 않을 사회적 장치나 산업들도 많다. 악의 없이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허세는 어느 순간 타인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얻어내는 일로 이어지곤 한다. 처음엔 어떤 구체적인 목표나 이득을 노리는 일 없이 허세를 시작했더라도 그를 향해 넘어가는 문턱은 매우 낮다. 스스로 미리 경계하고 있지 않는다면 자신조차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넘어갈 정도로. 순진한 허세와 악랄한 사기 사이에 긋는 선은 가늘고, 그 선을 넘어가는 순간은 포착하기 어렵고, 넘어간 후에 그를 입증하긴 더 힘들다. 어쩌면 자신 역시 어느새 자신의 허세를 진짜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허세가 사기가 되는 순간을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허세와 사기 사이의 선보다도 자신감과 자기를 속이기(자기개발서류에 잘 나오는 긍정적 자기 확신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믿으세요!" 같은.) 사이의 선이 더 가늘기 때문인지도. 2. 화장실 같이 가기 예전에 여성들끼리 손에 손을 잡고 다 같이 화장실 가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답변들이 제각각 달랐는데, 이를테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혼자만 화장실을 가는 것은 부끄러우니까 누군가가 총대 매면 그 기회에 같이 요의 해소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만 자리를 비우면 남은 사람들이 뒤에서 내 험담을 할까봐 불안해서 그런다는 사람도 있었고, 잠시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떨어져나오는 것도 싫은데 그 동안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는 대화가 뒤에서 계속 실시간으로 진행되면 따돌림당한다는 기분이라 그런다는 사람도 있었고, 모임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그런다는 사람도 있고("모임의 중심인 내가 없으면 재미없지?"), 혼자만 쿨하게 갔다오고 싶어도 그럼 다른 동행선호자들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보는 것처럼 보여질까("혼자만 특별한 듯 잘난 척하는 꼴이 재수없다.") 모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그런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에게 같이 가자고 요청했는데 그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거절하기 미안해서 그런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 기회에 화장실에서 따로 또 수다를 떨고 싶어서 그런다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더라. 오직 내가 처음에 추측했던 가장 단순한 이유, 여성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아서 남이 요의를 느끼면 자기도 같이 느껴서 그런다는 무슨 공감주술 같은 (인체의) 신비적 사유만 없었다. 타인의 제안이 자신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요의를 환기해 그 김에 해결한다는 소리는 있었지만. 내가 파악하기로는, 여성들 사이에선 다른 여성 누군가가 같이 화장실 가자고 자신에게 요청하면 같이 가주는 것이 기본 매너고, 거절하는 것이 무슨 잘못은 아니지만 요청자와의 사이가 소원해질 각오 정도는 하고 난 후에야 거절할 수 있다는 소리 같았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와 그 문제로 헤어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여성들 사이에선 손 잡고 화장실 같이 가야만 하는 이유는 꼭 찾을 필요 없지만(매번 정당화할 필요 없이 그냥 같이 가자고 요구할 수 있다.), 화장실 같이 가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매번 정당화한 후에야 동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꼭 찾아서 말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나 사회적 압력 같은 게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화장실 같이 가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더라. 남들에게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화장실 같이 가기 싫다는 여성들도 많았다. 그럼 일종의 회식 참석 압력 같은 걸로 이해하면 되나? 흐음.
1. 듀얼 VGA
서브 모니터와 피직스 연산 전담용으로 저가 VGA 카드를 하나 사서 장착했다. 성능보다 정숙성을 중요시해서 방열판만으로 냉각하는 놈을 골랐는데, 사용 소감은...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2. 종교 종교에 대한 개인적 입장은 술이나 도박에 대한 개인적 입장과 같다. 거기에 심취하는(더 나아가 중독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심취하는 편이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낫다. 보호자나 교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아직 없는 미성년자들에겐 권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걸 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에겐 강하게 권유하거나 유무형의 압력을 넣지 않는 편이 낫다. 업계인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 위험한 물건이다. 셋 다 즐긴다. 3. 가면을 쓴 온라인 자경단 놀이. 현시대의 마스크드 슈퍼히어로 놀이쯤 되는 것 같다. 공개표적(악당? 대개는 사소한 비매너 행위자나 말 실수자 같음.) 하나 설정하고 집단으로 몰매 놓기. (현실의 자신은 차마 감당하기 힘든) 높은 기준의 윤리적, 정의적, 헌법수호적 페르소나를 온라인 상에서 소환해 두르고 악당들을 두들겨패며 현실에선 맛보기 힘든 고양감이나 자신감 획득, 죄의식 감쇄, 권력 과시욕 해소, 성적 만족감 등을 대리충족하는 듯. 대개의 시리얼킬러들이 똑같은 동기로 자신의 작업을 시작하곤 한다. 그러기보다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악플 몇 개 달고 관련 욕구 푸는 쪽이 본인에겐 더 영리한 처신 맞겠네. -_- 저기에 무슨 관문효과 같은 거나 없었으면. -_-;; 4. 셀프 주유소. 요즘은 셀프 주유소만 가고 있다. 주변에도 권하고 있는데, 처음엔 어색하고 어려워보인다고 빼던 사람들이 이젠 셀프만 간다. 해보면 의외로 쉽고 빠르고 안전하고 정확하다. 그리고 더 싸다. 5. 책 몇 권. 요즘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단편집들 위주로 읽는다. 재미있다.
1. 심약
살아오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윤리를 개인적 소신 때문에 거스른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그건 착한 게 아니라 그냥 심약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공동체에 밉보이고 싶지 않다는 공포 때문일 수도 있고, 윤리적 고민을 원천차단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집단에 대한 복종심, 소속감, 연대감, 공동체 의식 때문일 수도 있고, 합리적 계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유는 뭐든 될 수 있겠다. 뭐, 그게 잘못되었다는 중2병적 소리는 아니고, 그냥 그건 '착함'이라는 도덕적 개념과는 다른 듯하다는 소리. 유대인 학살이라는 대세에 구태여 나서서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순응했던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심약한 것 뿐이었던 것처럼. 오히려 그게 '정상'이겠지... 2. 어린이날 정신 연령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린이날 셀프선물로 MP3P를 샀다.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다 통합하려 했는데, 여의치가 않아서. 3. 날씨 요즘 날씨는 예측이 힘들군. -_- 4. 이탈자는 공동체에 위험한가? 권력자는 피권력자를 통제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에 피권력자에게 통제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소대원을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 밖으로 돌격시키려는 소대장은 자신 역시 참호 밖으로 더불어 돌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어린이날 모처럼의 휴일에 집 안에 누워서 뒹굴뒹굴 잠만 자고 싶어도 자식들 눈초리가 따가워 억지로 유원지에 가고마는 가장처럼. 근데 누굴 통제하기도 싫고 누구에게 통제받기도 싫고 권력자도 피권력자도 되기 싫은(이게 실제로 구현가능하냐는 별개의 문제다.) 사람은 권력자, 피권력자 양자 모두에게 방해물, 심지어 적대물인 듯? 통제-피통제의 고리에서 어느 정도 (상대적으로) 벗어난 입장에서 큰 탈이나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공동체에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어느샌가 공동체의 (잠재적) 적이 된다. 과거처럼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드려는 경향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탈자는 존재 그 자체에 뭔가 벌(불이익)을 주려고 시도하는 듯. 공동체 존속 지지 입장에선 그게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하고 별 불만은 없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탈자가 존재할 여지가 많은 공동체일수록 좋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덕후 같은 사회적 잉여들은 그걸 감당할 만큼 평화롭고 풍요롭고 '인본주의적'인 공동체들에서나 생겨난다.(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전쟁터에선 이미 덕후인 자들조차 일사불란하게 명령에 복종하며 차츰 탈덕하게 마련이다. 끝까지 탈덕 안 하면 죽어나가니 역시 문제없음.) 공동체 전체 목표 달성이라는 측면에선 당연히 비효율적이겠지만. 5. 독서는 번역. 요즘 종종 생각하는 건데, 독서 행위 자체가 곧 번역 행위 아닌가 싶다. 작가의 말을 자신의 말로 번역해서 이해하기. 그래서 때로는 작가의 더 큰 이야기를 자신의 좁은 깜냥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미루어 짐작, 더 작은 이야기로 파편화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그걸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본다. 사실 독서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게임, 영화, 만화, 음악, 회화, 조소, 요리, 전화 수다.... 결국엔 의사소통 행위 대부분이 비슷하지 않은가 싶음. 오역이 없을 수도 없고, 있어서 오히려 더 즐거움.
1. 책갈피.
어디선가 관련 글 읽고. 이제껏 책갈피 종류를 사용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사용 거부할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용할 이유가 딱히 없어서인 쪽. 보통은 그냥 읽던 도중에 책을 덮고 나중에 대충 그 부근쯤 펼친 후 어디까지 읽었나 찾아낸다. 전자책도 책갈피 기능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2. 전력측정기 확인해볼 것이 생겨서 인스펙터 2 구입. 온집안의 가전제품들에 하나씩 연결하고 일일 전력 소모량을 측정해보고 있다. 음, 냉온정수기만 빼버려도 전기비가 꽤 줄 듯. 높은 전기비의 주범으로 의심했던 냉장고들은 의외로 전력을 적게 먹고 있다. 3. 더불어 살지 않는 공동체. 글 하나 읽고. 폴라니는 "과거의 공동체들에서는 공동체 전부가 모두 굶어죽을 수는 있어도 (현대의 공동체처럼) 구성원 중 일개인이 굶어죽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읽다보니 문득 궁금해졌는데, "공동체 구성원 중 누군가가 굶어죽진 않는다."라는 척도로 더 나은 공동체를 일률적으로 잴 수 있겠는가는 의문은 일단 제쳐두고(중동 아랍 여성이라면 과거의 공동체들에서 더불어 살기보다 현대의 공동체들에서 더불어 살기를 더 원할 것 같은데?), 정말 과거의 공동체에서 굶어죽는 개인이 지금보다 수(절대적 수치말고 상대적 비율)가 적었을까? 글쎄다.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지만, 과거라고 삶이 더 쉬웠을 것 같지는 않다. 폴라니가 말한 맥락은 "더불어 사는 삶은 지금보단 쉬웠다."겠지만, 그것 역시 글쎄다. 다만 그때는 노비나 농노나 동성애자나 마녀가 굶어죽어도 그걸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일개인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것 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대 중국에선 흉년 한 번 들면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고까지 하던데. 그리고 내가 보기엔 과거의 공동체에선 더불어 살기는 무슨 쉽고 어렵고 따지기 이전에, 그걸 못해내는 사람은 그냥 죽는 생존 차원의 절박한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예전엔 "더불어 사는 것"이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다면(억압의 형태. 로마 황제나 중국 천자 등 최고 권력자라도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죽는다.) 이젠 그게 교양 선택 과목처럼 선택의 문제(일개 소시민이라도 남과 더불어 살지 않아도 생존가능하다.)로 차차 바뀌고 있는 듯. 그리고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SNS들은 사람들 간의 유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켜 그런 변화 경향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시키고 있다고 보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음, 내가 보기엔 SNS는 참가자들에게 "너희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 관계들을 철회할 수 있다. 네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최악의 경우엔 도망칠 수도 있는) '안전한 관계' 맺기도 가능하다."는 통찰을 학습시킨다. 예를 들어, 어떤 SNS 참가자가 막말 등으로 해당 공동체의 집단공격을 받고 온라인 세계에서 완전히 철회한다 해도 그 사람의 오프라인 생존에는 큰 피해가 없을 것 같다.(온-오프라인 분리만 확실히 했다면.) 어떤 세계로부터 철회할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그 세계 속에서의 운신의 폭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그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소작을 부쳐왔고 앞으로도 부칠 농민과 그냥 1주일 묵다 떠날 관광객의 차이처럼. 이건 쌍방향으로 작용한다.) 각 개인이 관계 맺는 방법이나 책임감, 부채의식, 거기에 두는 가치판단도. 지연이나 혈연, 학연 등 (거기서 철회하기 힘든) 현실상의 관계에 기반하지 않는 자유로운 SNS는 점점 더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학습을 통해 약화시킬 가능성이 커보임. "그럼 넌 그렇게 변하는 것이 좋은 방향 같냐?"고 내 가치판단을 묻는다면, 모르겠다. 선택의 폭은 넓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곤 있지만... 공동체 의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내치거나 받아들일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만 논리 전개가 이상해서 적어봄. 덧. 2번. 냉온정수기는 24시간 작동하고 있는 주제에 사용중인 PC의 4배의 전력을 아이들 상태에서 소모하고 있었다.;;
1. 날씨
올해 봄 날씨는 예년과 달리 더웠다 추웠다 비만 한참 내리기도 하고 오락가락하니 재미있네. 2. 벚꽃놀이 양수리 강가 주변 버드나무들이 어느새 꽤나 많이 벚나무들로 바뀌어있다. 미적 이유 등으로 사람이 일부러 베어내고 바꾼 건가, 아니면 거기 버드나무들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자연사하고 있는 건가? 3. 닭고기 닭고기는 고기 자체를 먹기보단 육수를 내는 밑재료로 선호한다. 닭고기 자체는 별 향도 맛도 개성도 없고 게다가 열을 가하면 그저 퍽퍽해질 뿐이라고 느껴서. 그래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닭튀김 좋아하는 이유를 오래동안 궁금해왔는데, 최근 그 이유를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닭고기 자체엔 별 맛 없다고 느끼고 있었구나. (전한국인 대상 여론조사라도 한 것은 아니다.) 4. 탄산수 500ml 단위 페트병 포장에서 250ml 단위 캔 포장으로 탄산수 대량구매방법을 바꿈. 리터당 단가는 올라갔지만, 예전 페트병일때는 절반만 마시고 버리는 일이 잦았는데, 지금은 그러는 일이 대폭 줄어들어 실단가는 내려간 것 같다.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재활용쓰레기도 되려 줄어들어 안심. 5. 자기 중심적 서사구성능력 자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능력에 대해 요즘 생각해보고 있다. 그러니까 원시인류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면 자기들이 뭔가 잘못해서 하늘이 벌을 준다고 이야기를 꾸며내듯이. 그걸 개인적 차원으로 낮춰서, 자기가 주연으로 다른 사람들이 조연으로 세계가 무대로 나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 만약 어떤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래도 그는 자기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자기를 중심으로 서사를 꾸며내는 일은 필연적으로 더 거대한 이야기(삶의 의미라든지, 신의 존재라든지, 역사의 발전이라든지, 국가나 민족이라든지, 계급투쟁이라든지 뭐 그런 거대서사들. 세계정체성 환상?)의 존재를 증명없이도 믿게 만드는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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