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감상

0. 볼 만 했다.

1. 예전에 자기객관화 능력과 지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쟁한 적이 있다. 난 지능이 높은 사람도 자기객관화 능력은 낮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어쩌면 역의 상관관계가 성립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머리 좋은 사람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도 더 잘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앞뒤 모순 없이 완벽하게 맞춰가며 스스로에게도 설득력 있는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자기정당화, 자기합리화하기. 항상 자기 주변이 문제 있는 거지, 자신은 언제나 옳고 정의롭고 공정할 뿐. 세상만사 억울하고 부당한 일 투성임. ㅋㅋ 자신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언제나 주변이 자신의 높은 기준을 못 따라오는 거임. 그래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주변에 강요한다.(이걸 계몽이라고 간주한다.)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든 '처벌'한다. 따라서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일종의 숨은 파워몽거가 됨. 주변을 계몽하기 위해 규칙을 강요하려면 힘이 필요하니까.

성장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이 스스로를 속여오던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인식하고 인정하고 바로잡기"라고 생각한다. 이건 지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지혜, 의지, 용기의 영역 같은데. 남주는 20년 가까이 두 사람의 관계 파탄 책임을 온전히 여주에게만 전가하며 원망하며 그 자리에 멈춰서서 성장하려 들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을 파괴적으로 소모해서라도 그걸 여주에게도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어 집착함. 슬프네. 나라 해도 내 배우자(가장)가 비정규직 저임금 알바로 가족의 생계 꾸리면서 팔리지도 않는 소설이나 예술입네 계속 쓰고 있으면 미래가 불안해질 것 같은데? 특히 아기까지 가졌다면. 속물 따지기 이전에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뭐 그렇다고 여주의 불륜이나 비밀낙태가 옹호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을 정서적으로 괴롭히기 위해선 자신도 비슷한 정도의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정서적 학대는 실은 자기학대 과정이 된다. 학대자 역시 그 과정을 통해 파괴된다. 모든 학대가 그렇지 않느냐, 예를 들어 가장 즉물적으로 보이는 육체적 학대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타인을 주먹으로 치면 자신의 주먹도 상처를 입는 법이다. 음, 그 자기파괴의 시간이 더 길고 더 끈질기고 더 음유하다는 점에서 다르지. 장기전이자 총력전, 소모전. 정서적 학대는 결국 누가 더 큰 피해를 더 적은 비용으로 상대에게 효율적으로 입힐 수 있느냐 싸움이 아니라, 비슷한 피해를 동시에 당하되 누가 그걸 더 견딜 수 있느냐 싸움이다. 상처를 상대와 동시에 입어가며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 다른 더 좋은 데 쓸 수 있었던 귀중한 예산 얼마까지 낭비할 용의가 있느냐 비합리적 광기 허세경쟁하는 거지. 그리고 이겨봐야 피루스의 승리.

2. 때깔 곱다. 미남미녀들이 멋진 슈트 입고 돌아다니고 세트(여주 집, 미술관)도 아름다움. 영화 속 소설과 영화를 교차로 묶는 편집도 재미있고. 그걸 여주의 심장 박동 소리로 연결시키는 등 음향이나 음악도 잘 쓴다. 

3. 상당수 여성들은 거부감 느낄 듯. 여주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부터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테고, 소설 속 범죄도 가장의 폭력(복수) 행사 정당화할 도구로 여성 가족 구성원을 쉽게 자극적 범죄의 피해자로 만들어 소비해버렸다고 느끼기 쉬울 듯. 무엇보다, 여주의  잘못이 저 정도의 과장된 비유(불*륜 + 낙태 + 배우자 배신 = 강*간 + 살인 동급 범죄?)와 삶 전체를 통한 불공정(설정 등 영화 전체가 일방적으로 남주 입장 옹호.)한 응징을 당할 만한 짓인가, 저울 균형이 안 맞는다 생각할 거다. 여혐영화라고 매도하는 사람도 있겠다.

반면 남성들은 감정이입하기 좋을 듯. 애초에 영화 속 소설 장르가 범죄로 가족 잃은 가장의 복수물이고, 영화 역시 불륜으로 자기 배신하고 떠난 전처에게 복수("겉만 화려한 네 인생은 공허하고 망가졌고, 네 삶에서 유일한 진짜 사랑이자 구원이 되어줄 수도 있는 나는 널 이미 버렸다. 뼈저리게 후회하고 절망해라." 너무 적나라해서 내가 다 낯 뜨겁다. 유치하고 찌질한 욕망이긴 하다. 하지만 난 저 심정 겪어보지 않았으니 저런 욕망에 대해 쉬이 뭐라 하진 못하겠다. 애초에 자기 내면에 저 정도로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사람이라면 장편소설 끝까지 잡고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욕망이 곧 재능이지.)하는 내용. 깊이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시비 가리기 이전에 장르적 재미는 있다. 

4. A급 배우들이 우르르 나와 연기 잘 한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 다시 봤음. 뭐, 마지막으로 본 질렌할 주연 영화가 '페르시아의 왕자'였으니.;;

5. 여주에게 공감능력, 독해능력, 상상력, 도덕감, 자기객관화 능력, 자기반성 능력 등이 없었다면 이 복수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여주가 남주의 소설을 읽고도 이게 무슨 소린지, 뭐에 대한 메타포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흔한 장르물로 소비해버렸다면 남주의 복수는 공만 엄청 들였지 실패했을 테니까. ㅋㅋ 즉 성장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성장한 자에게 복수를 성공할 수 있었던 아이러니 상황인데, 이게 감독이 나서서 남주 옹호해주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여주는 좀 슬프겠지만 툴툴 털고 일어나 계속 자신의 삶 살아갈 테고, 남주는 여전히 거기 주저앉아서 "내가 이겼다!" 정신승리하며 과거의 상처 핥고나 있을 듯. ㅋㅋ

영화 '퍼스트 맨' 감상

0. 꽤 볼 만 했다.

1. 소리로 사람 폭행하는 영화. 온갖 비추에도 불구하고("스펙타클보다 드라마 중심이니 그럴 필요 없다.") 대형 아이맥스관에서 봤는데, 만족했다. 예를 들어 이륙 시의 로켓 진동과 소음을 글자 그대로 뼈를 통해 듣게 해주는 빵빵한 음향설비 덕에. 영화 내내 소음과 굉음으로 사람 괴롭히지 않으면 그 사이의 잠깐의 적막, 양극단 오감. 그리고 기대치 않았던 영상 쪽도 분량은 꽤나 짧았지만 질이 높아 포만감 컸다. 근데 영상 쪽은 못 하는 게 아니라 더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안 하네. 흐음. 기술적으론 가능한데 자제한다. 

2. 다만 음악쪽은 그 반대로 친절하다 못해 수다스럽다.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러움. 여기선 어떤 감정을 느껴야하는지 계속 알려줌. 특정 감정 강요 받는 것 같아 싫었다. 예능 프로 자막들처럼. 음악만 한 1/4 정도 줄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3. 실존인물 닐 암스트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닐 암스트롱은 실존인물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 속 조형 대상이다.

왜 이 영화 속의 닐이 그토록 달에 가려는 집념을 보였나, 왜 달 착륙 직후 발자국 찍은 다음 뜬금없이 인류의 진보 드립을 쳤나, 왜 그때까지 전혀 기색이나 암시조차 없다가(기자회견에서도 개인물품 챙길 자리가 있다면 그만큼 연료 더 가져가고 싶다고 재미없는 모범생 답변을 한다.) 달에 가서 갑자기 개인물품으로 죽은 딸 팔찌가 튀어나오냐 다 개연성 없다는 감상을 봤는데... 사실 그거 읽고 안 쓰려던 이 감상을 쓴다. 개연성 있던데? 

풀어쓰자면... 이 영화의 닐은 딸이 죽었을 때 이미 반쯤 같이 죽은, 죽음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을 이미 납득했다. 자기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달관 넘어 은근히 죽기 바라기까지 하는 인간임. (영화속 닐의 종교적 배경이 기독교라면 설득력 더 높일 수 있겠다. 즉, 자살 못하니 사고사 갈망.) 딸 죽은 후 테스트 파일럿하면서 같은 사고 3번이나 냈다고 근신 처분 낸 회사간부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데, 실은 그 사람들이 얘를 정확히 본 거다. 잠재적 사고유발자, 죽음갈망자. 이런 조종사에게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 시험기를 몰게 할 수는 없는 거지. 사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실패를 바라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된 달착륙 프로젝트엔 더더욱 투입시키면 안 되지. 기껏 막아놓았더니 더 위험한 자살임무(우주조종사) 자원함. 내가 보기엔 우주조종사 후보 면접시에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은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압박면접처럼 보였지만) 핵심을 제대로 찌른 거다. "딸의 죽음이 네 임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것 같냐?" 닐은 "영향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다."고 답한다. 이건 전형적인 "사실만 말하는 거짓말"임. 영향 있을 건 물론 사실인데,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 많지! "해안 백사장에 모래알이 3알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애초에 임무 중에 사고로 죽고 싶은 놈인데. 다만 전문가로서 자신의 직무능력 욕심, 집착, 자존심이나 긍지, 성실성, 범생이 기질, 책임감은 여전해 자기가 고의로 사고를 내서 임무 망칠 마음은 추호도 없고 진짜로 100% 능력껏 최선을 다하다가 그래도 결과적으로 어쩔 수 없어 죽는, 자기 말고 그 어떤 전문가라도 불가항력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명예로운 죽음을 바란 듯. 올드린이 사고로 죽은 동료 장례식에서 사고 원인으로 무능함을 짚었을 때 평소 모든 일에 감정 없이 사는 듯한 암스트롱이 보기 드물게 격하게 반응한 이유도 의리 같은 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듯. 

근데 닐은 공학 전공 배경 등 관련 능력도 좋고 집중력도 좋고 근면하고 준비도 잘하고 반쯤 죽음 받아들인 달관 상태니 위기 상황에도 혼자 태연, 패닉 없이 침착히 사태 수습하고, 겉으로만 보면 멘탈도 강하고 스트레스도 잘 견디고... 그러다 보니 계속 승승장구 결국 달에까지 무사히 가버렸다. ㅋㅋㅋ 이 정도면 닐은 할 만큼 한 거다. 글자 그대로 엉덩이 밑에 폭죽 깔고 앉아 터뜨려 달까지 날아가는 미친 짓을 했는데도 못 죽었으면 더 이상 다른 수가 없음. 그래서 암스트롱은 그 황량한 달 풍경을 바라보며 딸에게 비로소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딸과 함께 할 수 없으니(팔찌는 그래서 가져간 듯. 함께 죽으려고.) 그나마 딸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지구로 돌아온 듯. 기나긴 장례식이었고 인류사에 남을 위대한 (자살)실패담이군.

난 다 싫고 다 모르겠고 우주로 나가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던 남편은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으나... 아내와의 재회는 감동의 도가니탕이라기보단 어색, 민망, 미안, 탕아의 회심 및 화해시도 같았음.ㅋㅋ 암스트롱의 아내는 남편의 이런 죽음 갈망을 이전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듯. 뒤에 남겨진 아내나 아들은 나 몰라라 오직 자기만 편하자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욕망. 그래서 달착륙 떠나기 직전 밤에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직접 못 돌아올 수 있다 말하고 가라는 거지. 비겁하게 침묵으로 거짓말하고 도망치지 말고. 아내 입장에선 나름대로 남편이 지구로 살아 돌아올 족쇄를 건 것인 듯. 저 결혼 생활 오래 갈 수 있을까? 나였다면 닐이 이번에 회심했다 해도 그동안 자기나 자식들에게 해온 짓들에 이미 오만 정 다 떨어졌을 듯.

덧. 아, 그때까지 아무 애국심이나 인류애, 인류 문명 공헌 의욕 같은 거 안 보여주다가 달에 가서 급작스레 인류의 위대한 도약 운운 드립한 건...당연한 것 아닌가?  거기까지 가서 그 정도 서비스는. 국민들이 혈세를 어디다 썼는지 자부심 느끼게 해줘야지. 누구 돈으로 갔는데. 거기 들어간 돈이 얼만데. 스폰서에게 돈 잘 썼다는 효용감을 줘야지. 그래야 나사에 앞으로도 계속 펀딩 들어와 다음 프로젝트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지. 자기 뒤에 올 우주개발 프로젝트 사다리 걷어차기 심보가 아니라면. 국뽕이라고 쉽게 욕하지만 국기도 거하게 꽂는 퍼포먼스도 좀 하고 그래야 국민들이 국뽕에 취해 당장 자기 밥 굶어도 복지할 돈으로 달에 가서 돌멩이 주워오라고 우주개발에 돈 대주지. 게다가 보니까, 이건 거의 뭐, 사전에 준비해간 멘트를 영혼 없이 국어책 읽듯 읊더만. 감정절제 연기가 아니라.ㅋㅋ

덧2. 뭐, 닐이 오직 죽기만을 위해 달에 갔다면 과장이고... 이 영화 속 닐 심정은 본인조차 잘 모를 듯. 감정표현 안 하고 가족과도 슬픔 안 나누고 스트레스 내면으로 억누르기만 하는 인간인데. 닐에게 자신의 감정들 말로 잘 풀어 설명해보라면 못 할 듯. 내면이 엉망진창 복잡했을 것 같다.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중 최선 다 했는데도 불가항력적 상황 만나 어쩔 수 없이 죽어 딸 곁으로 가기를 바라는 욕망(가장 큰 동기. 50% 이상 비율.), 현실도피 우주에 대한 동경, 인류사에 남을 거대 프로젝트 팀 리더를 맡았으니 성공시키고 싶다는 책임감(사명감?), 전문가적 직무능력 인정욕... 근데 내가 보기엔 이런 심리 상태 인간에겐 당대 최대 프로젝트는 커녕 골목길 구멍가게 주인조차 맡기면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심리상담가 붙여 치료 받게 해줘야지. 겉보기엔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지만 위태하기 짝이 없는데. 죽음으로 도피하는 욕망, 사고를 오히려 반기는 심리가 어느 정도 이상 내재된 사람은 그냥 인재(인간재앙)임. 이건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나사 인사관리직들 책임. 대타도 많았을 텐데. 어쩌다보니 결과야 좋았지만.

덧3. 극장에서 안 본다면 모를까, 기왕 본다면 시설 좋은 아이맥스에서 볼 것을 추천. 진동과 음향, 후반부 10분 가량의 시야확장(갑자기 세상(우주)이 극단적으로 선명해지고 고요해지고 넓어진다. 좁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지구에서의 화면과는 달리.) 경험을 제대로 즐기려면. 이걸 아이맥스에서 안 보면 어떤 영화를 아이맥스에서 보나.

감정 중심 심리극이라지만 중년남들 감정이입 잘 될 듯. 거기에 더해 우주덕이면 말할 것도 없고.

영화 '업그레이드' 감상

0. 꽤 볼 만 했다. 보기야 예전에 봤지만 뒤늦게 쓴다.

1. 내용 자체는 꽤나 흔해빠졌고 전개도 SF 소설이나 게임 팬들은 보는 즉시 거의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진부하다. 하지만 각본은 그걸 꽤나 효율적으로 잘 활용했고(클리셰를 피해야만 할 예비표절 장애물이 아니라 선행투자된(관객에게 영화내 한정된 설명 자원 굳이 투자할 필요 없는.) 자본으로 만듬.) 연출과 촬영도 깔끔하고 영리하다. 주어진 예산(꼭 돈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 한계 내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군살이 없다.

2. 특히 격투씬에서 동선 설계와 카메라 무빙이 훌륭하다. 격투할 때 주인공의 동작이 바보 같고 부자연스러워 코믹하기까지 한데, 그러면서도 비인간적으로(사회인이라면 기본탑재한 타인 인체파괴에 대한  거부감이나 망설임 없이) 효율적이고, 결과물은 꽤나 끔찍해 섬뜩하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얼간이처럼 어색하게 움직여 웃으며 지켜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유혈낭자 고어씬으로 급마무리되어 분위기 싸해짐. 요즘말로 "갑분싸"? 90도 꺾어가며 움직이는 카메라 움직임이 그 비일상성, 비인간성을 더 증폭시키고. 사람과 기계 사이 존재의 움직임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연출하나 고심한 흔적이 보이더라.

3. 소리 연출도 좋다. 특히 효과음. 냉정히 생각하면 사람 몸에 무슨 모터를 이식한 것도 아니고 컨트롤만 전기칩이지 구동 자체는 사람 근육 기반인데 움직일 때 저런 "위잉~ 웅~" 전자음이 크게 날 리 없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공기 없는 우주에서의 전투기 독파이트씬에서 "끼유웅~"하는 도플러이펙트음이나 폭발음 발생도 말이 안 되지. 그냥 순간적 CPU 과부하와 그로 인한 전압 상승의 부작용으로 주인공만 들을 수 있는 내부이명 같은 거라고 하면 되겠다. 구구한 설명 없이도 저 효과음만 나면 현재 주인공은 스템 무적모드 가동중이라는 걸 관객이 바로 알 수 있음. 이제부턴 상대를 압도해버릴 걸 기대하고 흥분 준비할 수 있음. 파블로프의 개처럼.

스템 목소리는 누구나 '할'이나 '글라도스' 떠올릴 듯.(세대가 갈린다.) 사실 스템 목소리가 곧 스포일러였지.ㅋㅋ 이름부터 스포일러였는데 뭘 새삼.ㅋㅋ(처음엔 뭐든 될 수 있는 가능성(줄기세포)을 암시하나 싶다가 인간 신체를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따왔나 하다가 '디 이블 위딘' 떠올렸음.)

4. 기본적으로 돈 안 쓰려고, 꼭 필요한 곳에만 쓰려고, 효율적으로 돈 쓰려고 노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좋게 말하면 제작 가성비가 높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여유나 낭만 없이 삭막한 거고. 예를 들면 백만장자의 저택 외관은 긴 선돌 두 개 기대놓은 것뿐(ㅋㅋㅋ. 거긴 현관 입구일 뿐 거주공간은 그 밑의 지하에 있다는 설정이다. 백만장자가 인간관계와 속세 기피하는 은둔괴짜라는 설정과 맞물려 나름 설득력 있다.)이고, 미래 자동차는 그냥 요즘 자동차에 플라스틱판 대충 덮어놓은 티가 너무 나며, 가장 중요한 스템이라는 칩의 외견도 딱 80년대 싸구려 IC 칩처럼 생겼다. 그 첨단 고성능에 너무 안 맞는 복고풍 외견이라 웃김. 입출력단 16개 정도로 인간 생체제어 관련한 그 모든 전기신호를 제어할 수 있다고?

5. 보면서 진범이나 결말 예측은 했는데... 대자본(물론 이 바닥에선 저예산이겠지만.) 들어가는 상업 영화에서 설마 그럴까 싶어하다가 되려 허를 찔렸다. 결말 깔끔하게 내서 좋네. 내가 이래서 저예산 영화를 보는 거지. 대자본 들어가는 영화에 비하면 QC는 엉망이지만 그만큼 외부간섭이 덜 들어와 그나마 창작자 자유도가 높으니까.

6.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액션 영화로선 너무 어둡다. 배경이 주로 밤이거나 실내거나 지하라서 액션씬에서 동작들이 잘 안 보임. 가뜩이나 격투할 때 일반적인 동작을 보이지 않아 동선 예측해서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마당에. 색감 기조도 주로 검은색 계열 아니면 푸른색, 붉은색 위주로 단순 통일되어 있어 지루한 감이 있고.

7. 별 상관 없지만 트집 하나 잡자면, 팔 안에 화약식 총기류를 삽입하는 것은 넌센스다. 우선 총구가 손바닥에 가려 눈과 일직선상으로 놓고 조준하기 힘들고(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구 바로 위에 카메라가 몇 개 달려 칩과 직결, 조준 보조해주는 듯. 하지만 그 조그마한 렌즈가 발포시 총연이나 섬광, 그을음, 땀, 피, 흙으로 가려지면?), 록한 팔꿈치와 어깨 관절에 반동이 몰리기 때문에 탈구가 되지 않더라도 연속 발사시 조준선 제어 힘들며, 무엇보다 열과 탄매, 연기, 잔류화약 찌꺼기 배출이 안 된다. 사람 몸 안에 총을 박아넣고 연속으로 총을 쏘는데 그 열기는 어디로 가나? 어떻게 총신을 식히나? 수냉이라면 배보다 배꼽이 크고 펠티어 압전소자라도 박았다면 더 큰 바보짓이다.

격투기하는 사람들이 보면 웃기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저런 (몸은 딱딱하게 굳어 가만히 있고 하체 연동한 체중이동 없이 오직 상체만, 팔만 휘둘러 타격하는) 동작으론 타격에 체중을 온전히 실을 수 없다. 상대에게 충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접촉하는 것을 최우선시한 타격임.(의미가 없단 소리가 아니다. 플래싱이나 거리 측정, 견제, 진지구축, 시야방해 등 용도는 무궁무진하지. 잽처럼. 이것도 많이 맞으면 충격이 쌓이기도 하고. 그 이전에 화초란 소리.) 만일 사람이라면 무의식중 제어하는 근육의 리미트를 스템이 풀어버려 굳이 체중 싣지 않고도 몸 전체 코어 근육 연동 없이도 팔근육만으로도 강한 타격력을 발휘하는 거라면... 그럼 적어도 액션씬 직후 스템 제어 풀린 후 근육의 경련이나 통증, 관절 이상을 호소하는 씬이 있어야지. 근육이나 관절의 한계를 넘어서 내구성과 가동범위를 고려치않고 무리하게 굴려버렸다는 소리인데 그럼 반동이 있어야할 듯. 다음날 지옥의 근육통을 호소한다든지.

영화 '흔적 없는 삶' 감상

0. 재미있었다.

1. 제목에 낚여 아무 정보 없이(LNT라길래 환경 운동 영화인 줄 알았다.;;), 아무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훅 사로잡혀 끝까지 집중해 몰입 깨지 않고 봤다. 처연하고 아름답고 쓸쓸하다. 보는 내내 행복했음. 흠 잡을 데가 거의 없다.

2. 원래 노숙하는 이야기 좋아한다. 

3. 내겐 해피 엔딩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듯. 난 가족은 반드시 같이 살아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지만, 각자가 삶에 대해 바라는 게 너무 달라 어느 한 쪽의 극단적 희생 없이는 도저히 서로 맞춰줄 수 없다면, 각자 따로 떨어져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가족이고. 그게 서로를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일 수도 있지. 가족 구성원 간에도 적정 거리 유지하는 감각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적정 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멀 수도 있다. 

아버지가 이기적인 걸까? 만일 남주가 계속 딸을 그런 식으로 잡아두고 있었다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미성년자인 딸에게 다른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고, 다른 다양한 삶의 방식들은 경험시켜주지도 않고, 지금 살고 있는 삶과 비교해볼 정보나 경험 제공 없이 오직 저 삶의 방식 하나만 유일한 선택지처럼 제공하고 있었으니까. 저건 토끼몰이처럼 사실상의 강제고 가족애를 인질로 잡은 겁박이고 성장 가능성 박탈이고 심지어 학대일 수도 있다. 정부 개입은 적절했다. 무엇보다 저건 딸에게 비가역적인, 돌아갈 수 없는 외길이다. 지금은 딸 자신도 저렇게 사는 게 행복할 순 있어도. 한창 교육을 받고 사람들을 사귀고 자신의 세계를 넓힐 성장기에 저렇게 자라버리면, 나중엔 (아버지가 정해준 삶의 방식 말고) 다른 삶의 방식을 한 번 경험해보고 싶어져도 그 때 가선 할 수 없을 걸. 미래의 선택의 폭이 아주 좁아질 거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학력도 경력도 인맥도 없으니 미국 사회 속에서 그럴 듯한 직장 잡기 힘들 듯. 비정규 저임금 임노동직이나 전전하겠지.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그 레벨 한정이고. 세계가 아주 좁아질 걸. 물론 직업이나 소득이 삶의 전부는 아니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며, 그렇게 살면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가진 돈만 없는 무자산자 수준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자본들(인맥 등 소셜 자본, 소통 스킬 등 언어 자본, 문화 체험 등 교양 자본, 신변 보호 등 안전 자본...)도 다 바닥인 사회최약자 레벨인데 행복하기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꽤 힘들 듯. 그 때 가선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싶어도 상처만 잔뜩 받고 다시 숲으로 되돌아가도록 내몰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만일 계속 저렇게 자랐다면.

하지만 딸은 다른 삶(자신에게 더 나은 삶. 벌집에 맨손을 집어넣듯, 자신을 상처 입힐 수도 있는 독침을 가진 타인을 무작정 신뢰할 용기를 내는 삶. 몰랐을 땐 모를까, 타인들과 소통하고 교류하고 리스크(상처) 감수하여 보답 받는 기쁨을 한 번 알아버리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을 찾아 아버지를 떠나고 아버지는 딸을 붙잡지 않는다. 어느 가족 구성원을 위해 다른 구성원이 희생하지 않고(그렇다고 부녀가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건 남자에게 너무 가혹한 희생 강요가 된다. 딸 양육 위해 자신 갈아넣기.) 서로를 놓아주고 서로에게 최선인 길로 각자 따로 간다. 쓸쓸하지만 따뜻한 해피 엔딩이다. 난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 좋아한다. 이기적으로는 살되, 타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거나 희생시키지 않는.

영화 '베놈' 감상

0. 그럭저럭 볼 만 했다.

1. 편집은 속도감 있고 리듬감도 그렇게까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흐름은 엉망이고 개연성도 낮은데다가 중구난방. 비유하자면 열심히 카메라 흔들어대고 폭발 일으키긴 하는데, 보는 관객 입장에선 별 감흥이나 흥분이나 스릴 못 느끼는 밋밋한 총격액션씬 보는 기분. 

2. 톰 하디는 여전히 연기 잘 한다만... 의미 없다. 잘 할 가치가 없는 일을 잘 하네.

3. 그러니까 고국인 미국에선 기분 나쁜 재패니메이션 오타쿠 핵아싸 루저 찌질이로 낙인 찍혀 일찌감치 번식탈락한 와패니즈 백인남이 일본에 외국어 강사로 일하러 와서 갑자기 상남자 핵인싸 이케멘 킹카 취급 받는 바람에 조국을 배신하는 상황? ㅋㅋㅋ 이 무슨 코믹스 굴지의 배드애스 베놈의 위엄과 카리스마, 가오 다 깎아먹는 서글픈 동족 배신 동기냐. 차라리 지구 환경이나 음식(인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동족에게 나눠주지 않고 혼자 독점하고 싶었다고 나쁜 남자 위악 포스라도 풍기든가. ㅋㅋㅋ 아, 가슴이 아파. ㅋㅋㅋ

4. 그렇다고 반지닦이까지 소환될 정돈 아니고... 고전 배트맨 영화 시리즈에 비하면 영화 '배트맨 포애버' 정도. '캣우먼'보단 낫다. 그러니까 기대 충분히 낮추고 보면 킬링 타임 정돈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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