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힐빌리의 노래' 감상

0. 재미있었다.

1. 이야기의 초점이 흔들리고 거칠지만 술술 잘 읽힌다. 

2. 명예를 지키는 폭력. 법보다 가까운 주먹. 좁은 사회, 후견 문화, 그들끼리의 율법. 이거 딱 무협의 세계잖아.ㅋㅋ 

3. 저자가 자신이 "군대 가서 사람 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잘 알겠고, 거기에 공감한다. 저자의 군대 경험의 긍정성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근데 읽다 보니 이거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입문자 세뇌할 때 쓰는 수법들인지라 무서웠음. 물론 원조는 군대의 정신개조고 민간의 사이비 종교 단체의 입문식이나 회사 오리엔테이션 합숙 교육 등은 그걸 모방한 것 뿐이겠지만. 하긴 그 정도의 극단적인 감시, 격리, 고립, 매몰, 즉각적 상벌 피드백 체감, 잠 안 재우기 등 육체학대, 정서학대, 과거 인격 총체적 부정을 통한 자아파괴 아니면 사람이 변할 수가 없겠지.ㅋㅋ

4. 책 내용과 관련 없지만 2번 관련. 중국 자수성가 부자들과 접해보면 출신지역이나 성장배경과 상관 없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사고방식이 하나 있다. "재력보다 폭력(ex. 국가권력)이 먼저다." "폭력은 재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역은 불가능하다." "재력은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 "관을 끼면 모든 일이 가능해지고 관을 거스르면 모든 일이 불가능해진다." "책 속에 재물과 미녀와 친구가 있다."(공부해 관료만 되면 나머진 저절로 따라온다.) 따라서 중국 부자들의 결론은 언제나 하나다. 시장과 사유재산 보호, 법치 등 제도가 잘 정비된 서구 선진국가로의 이민. 난 이민을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중국 부자를 모른다. 관의 변덕에 자신의 모든 기반이 순식간에 날아가리란 걸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예전엔 오직 이런 가치관을 공유하는 곳에서만 무협소설이 대중적으로 크게 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국이나 타이완, 2000년대 이전 한국 같은 곳. 서구인들의 보편적 무협 장르 거부감은 내공 기반 황당액션 같은 방법론보다(이건 익숙해지면 극복되더라.) "폭력이 재력보다 먼저다. 폭력은 재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역은 불가능하다."는 공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원적인 세계관 괴리에서 오는 것 아닐까 싶었으니. 제1세계인들이 보기엔 당혹스럽겠지. "왜 돈이 폭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세상은 돈으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 세상이 돈으로 움직이기 위해선 먼저 제도가 필요하다. 제도를 강제할 폭력이 필요하다. 법이 정초되기 전의 어둠 속에선 언제나 폭력이 재력보다 먼저다. 세금이 없으면 군대를 유지할 수 없지만, 세금을 걷기 위해선 먼저 군대라는 이름(이름은 다를 수 있다.)의 최강의 폭력을 보유해야만 한다. 폭력독점은 근대국가의 기본 대전제다. 예전에 내게 무협의 협객들은 일도 안 하면서 어떻게 돈을 그처럼 펑펑 쓰고 다닐 수 있냐고 진지하게 묻던 미국인이 기억난다.ㅋㅋ 무협 독자들은 그런 기초적인 거야 말 안 해줘도 알지. 충분한 폭력만 가지고 있다면 돈은 어떻게든 나온다는 것을. 영웅이랍시고 어딘가의 탐관오리나 한간 잡아죽이고 그간 축적해놓은 재물을 훔쳤겠지. 소작료 악랄하게 징수하는 불의한 부잣집 담을 밤중에 몇 번 넘었겠지. 어디 산에 눌러앉아 지나가는 표국 대상으로 밑천 안 드는 장사를 좀 했겠지. 문파나 방회 등 단체라면 나와바리에서 보호세 좀 조직적으로 뜯었겠지. ㅋㅋ 얘들 돈이 대체 어디서 나오느냐를 묻기 시작하면 무협이라는 천진한 낭만(당하는 입장에선 비극)은 파괴된다. 현세대 한국인들은 그 중간 어디쯤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양쪽 세계관을 모두 이해할 수 있지만, 30년 정도가 지나면 한국인들도 무협 세계관을 받아들이는데 곤란함을 겪지 않을까 싶은데.

근데 이 책 읽고나니 무협이라는 장르의 유통수명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팔래치아 산맥 근방엔 무협 팔아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네들은 무협 정서 이해할 수 있겠네.거대한 미개척 시장이 거기 있을지도?ㅋㅋ 근데 얘들은 책이나 영화 살 돈이 없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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