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소마' 감상

0. 볼 만 했다. 이하 스포일러 많음. 

1. 근데 스포일러가 의미 없는 영화긴 하다. 주입식 영화임. 감독이 이후 스토리 전개나 복선, 암시를 계속 가르쳐주고 복습까지 시켜주니까. 그 과도한 친절함과 배려가 은근히 모욕적이기까지 함. 무례로 인한 불쾌감을 노린 건가? 보다보면 대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쉽게 되고 그게 그대로 일어난다. 애초에 정석대로만 가고. 영화 자체가 무섭다기보단 안전하고 몽롱하고 괴이함.

2. 원래 사이비종교 이야기 좋아한다. 멀쩡한 사람이 사이비종교에 빠져 인생 말아먹는 이야기도 좋아하고, 낙오자가 사이비종교 세워 승승장구 흥하는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어디선가 이게 사이비종교 공포물이라길래 득달같이 달려가서 봤음. 근데 이거 사이비종교 소재 공포 + 로맨스던데.ㅋㅋㅋ 

여주와 헤어질 타이밍만 노리고 있지만 이별을 우유부단 미루고 있는 (이게 유일한 의지처를 잃은 여주가 까딱 사고칠까 걱정해서도 아닌 것이, 자기 여친을 친구들의 공동공격감으로 제공하고 있다. 요즘말로 "은따" 조장? 정작 자신은 친구들이 여친 공격하면 대신 변호하고 방어해주는 좋은 사람 입장에 서고. 여주를 독립시키지 않고 계속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듬.)무성의하고 비열한 남친(근데 이 놈은 애인에게만 그러는 것도 아님. 친구에게도 야비하게 행동한다. 논문감 인터셉트 등.)과 그걸 알면서도 남친에 집착하며 비굴하고(여행 가는 걸 남주가 계획적으로 여주에게 숨긴 게 들통났는데도(당일 결정났다면서 이미 비행기 표는 예전에 다 사놨음.) 남주가 되려 적반하장 화내니까 사과하며 매달림.) 추하게 매달리던 의존적 여주.(여주도 그다지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게, 정신적으로 자립 못 한 의존병자임. 남주를 시도 때도 없이(한밤중에도. 친구와 있을 때도.) 불러내서 기 빨고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음. 정서적으로 지치겠더라. 참작할 사정이 있긴 했지만.) 결국 여주가 남친 정리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쯤 되겠다. 이게 해피엔딩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왜냐하면 결말의 그 단호한 결별도 온전히 여주의 독립적 선택, 성장, 구원이라고 보긴 힘들기 때문에. 그보단 여주가 컬트 집단의 무언의 압박과 약기운, 체력고갈로 인해 엉망이 된 판단력, 남친 외도 목격으로 인한 감정적 스트레스, VIP 대접 둥기둥기... 등에 원래 약했던 멘탈이 무너지고 굴복해 그저 기존의 남친 대신 의존할 수 있는 새로운 유사가족 공동체로 갈아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저 여주는 이제 마을 사람들의 아이를 끝없이 낳아주는 출산기계 역할을 아마도 하게 될 듯.(좁은 사회의 근친교배 위험 완화할 외부인 피 수혈.)

3. 표현이 좀 상세하고 고어한 씬이 있긴 한데 별로 무섭진 않다. 계속 지겹게 미리 예고한 후에 예측한 것을 느리게 보여주니까. 영화 보면서 무서웠던 부분은 딱 하나. 공감폭력. 누가 내게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든 방어할 수 있겠는데, 저렇게 개인으로, 또는 집단으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감 공격을 마구 시도해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날 방어할 수 있을까 생각했음. 방어할 수는 있겠지만 주먹보단 확실히 번거롭겠다.

영화 내용과는 상관 없이 공감 관련. 영화 보면서 여성들끼리의 커뮤니티에선 서로에 대한 공감 노동이 기본 옵션인 것 같던데(그루밍처럼.), 바로 그게 여성들의 성취를 저해하는 작은 요인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내 안의 여혐인가? 물론 주요인이 아니라 여러 부요인들 중 하나란 소리다.) 심력이나 관심, 신경 소모 등 자신의 한정된 사고 리소스를 그쪽에 계속 지속적으로 갈취당하니까.(주변에 누군가에게 혹시 공감노동해줘야만 할 일이 있나 상시 신경 쓰고 있어야만 함. 있으면 해줘야하고. 안 해주면 비례를 넘어 심지어 공격 행위로까지 받아들여지는 것 같음. 최악의 경우엔 (존 윅식) 엑스코뮤니카도.ㅋㅋ) 냉혈파충류 같은 남자들끼린 비공감 상호주의가 기본인지라(상사 등 갑과의 관계가 아닌 이상.) 그 쪽엔 자원을 할애 안 해도 그걸 서로 양해해주거든. 심지어 여성들조차 남성들이 그렇게 공감노동 안 하는 걸 양해해주고 용납해줌. 그러니 상대적으로 공감노동 안 해도 되는 남성들의 심력 가용자원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ㅋㅋ

4. 중간 중간 웃음이 터져나오는 부분이 좀 있었다. 예를 들라면... 마취된 남주를 배 가르고 내장 들어낸 도살대 위 곰 옆에 눕히길래 다음 무서운 장면이 예상되어 떨었는데, 그냥 남주를 곰 안에 고스란히 집어넣었길래 웃었다. ㅋㅋ 남주가 곰돌이 잠옷 입은 듯 눈을 요리조리 굴리기까지 한다! 귀여워! ㅋㅋ 그거 보며 웃으면서 소 안에 돼지 넣어 굽는 중국요리법 떠올렸으면 공감능력 떨어지는 나쁜 놈일까? 여담이지만 그렇게 구우면 소는 까맣게 타버리고 오직 돼지만 꺼내먹는다. 그래, 사치스럽지. 소고기의 육즙과 향을 돼지고기가 흠뻑 빨아들여 맛있어진다고. 아니, 뭐 그렇다고.ㅋㅋ 근데 다른 관객들도 이 장면 말고 다른 장면들에서 종종 웃더라.

덧. 영화의 교훈 : "자신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사람을 조심하라." 사람은 대개 아프면 약해지기 마련이고, 약해졌을 때 누가 공감해주면 쉽게 넘어간다. 꼭 사이비종교뿐만이 아니라... 이를테면 자신이 여성인데 애인과 잘 안 풀려 속상하고 힘들고 외롭고 아플 때마다 항상 옆에 있어주며 그 아픔에 공감해주는 남자사람친구라든지. 물론 흑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한 선의겠지만.ㅋㅋ 공감은 주먹보다 훨씬 사람을 잘 무너뜨림.